나는 앱 개발 외주를 두 번 맡겨봤다. 각각 6천만원, 2500만원. 둘 다 프로젝트가 폐기됐다. 총 8500만원을 날렸다.
이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다.
8500만원을 날린 경험
첫 번째 외주는 개발을 할 줄 모르던 시절이었다. 위시켓에서 개발자를 찾았다. 서비스 설계도, 개발 설계도 할 줄 몰랐으니, 제대로 된 개발자를 필터링할 방법이 없었다.
개발자가 "기획서를 만들어서 주세요"라고 했다. 만들어줬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매우 허접한 기획안이었다. 필수 요소들이 누락되어 있었고, 깊이가 매우 얕았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이랬다. UX/UI가 엉망인 제품이 나왔다. 개발 중간에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잦았고, SSOT 관리는 전혀 안 됐다. 앱은 만들어졌지만 버그 투성이에 제대로 작동도 안 되는 상태로, 돈은 돈대로 6천만원을 던진 채 프로젝트가 종료됐다.
1년 반 뒤, 다른 앱 개발 프로젝트를 맡겼다. 이번에는 좀 더 제대로 된 프로세스로 개발을 했으나, 결국 이 프로젝트도 중도 폐기됐다. 2500만원.
돌이켜보면 근본 원인은 명확하다. 내가 서비스 설계를 할 줄 몰랐다. 설계를 모르니 제대로 된 개발자를 고를 수 없었고, 기획서의 품질을 판단할 수 없었고, 개발 과정에서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위시켓 같은 개발자 연결 플랫폼이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가?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개발자를 "연결"해줄 뿐, 프로젝트가 성공하도록 도와주지는 않는다. 가치사슬 상으로 보면 그냥 유통 플랫폼과 다름없다.
이 경험이 studio.bth를 만든 이유 중 하나다.
외주 실패의 진짜 원인
"전문가한테 맡겼으니까 알아서 해주겠지." 합리적인 기대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게 외주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
이전 글에서 홈페이지 외주가 왜 실패하는지 이야기했다. 비즈니스 설계가 없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설계가 있어도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클라이언트가 참여하지 않을 때.
사장님만 아는 것들
외주 업체가 아무리 뛰어나도, 사장님의 사업을 사장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고객이 어떤 말투를 쓰는지. 경쟁사가 최근에 뭘 바꿨는지. 이번 분기에 어떤 제품이 밀리고 있는지. 이런 맥락은 외주 업체가 리서치로 알아낼 수 없다. 사장님의 머릿속에만 있다.
이 맥락이 설계에 반영되지 않으면, 아무리 예쁘고 기능이 좋은 시스템도 사업 현실과 동떨어진 산출물이 된다.
던져놓고 떠나면 벌어지는 일
외주 업체가 중간 산출물을 보여준다. "이 방향이 맞으세요?" 사장님이 바빠서 "네 괜찮아요"라고 대충 답한다. 2주 뒤에 완성본을 보고 "이거 우리 고객한테 안 맞는데요?"라고 한다.
처음으로 돌아간다. 시간과 돈이 날아간다.
이게 정확히 내가 겪었던 사례다. 위에서 말한 6천만원짜리 외주가 이 패턴이었다. 중간에 "이 방향 맞으세요?"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고, 완성본을 보고 나서야 "이건 아닌데"를 깨달았다.
비즈니스 설계 없이 개발하면 벌어지는 일에서 소통 비용이 프로젝트를 죽인다고 했다. 클라이언트가 참여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통이 끊기면 방향이 틀어지고, 방향이 틀어지면 전부 다시 해야 한다.
사장님이 해야 할 일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1. 상담 단계: 솔직하게 말하기
"우리 회사 홈페이지 만들어주세요"가 아니라, "지금 이게 문제예요"를 말해야 한다. 견적이 느리다, 고객 문의를 놓친다, 직원이 수작업에 묻혀 있다. 구체적인 불편함을 말해야 정확한 진단이 나온다.
숨기면 안 된다. 매출이 떨어지고 있으면 떨어진다고, 경쟁사에 밀리고 있으면 밀린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2. 설계 단계: 검증하기
설계 문서가 나오면 읽어야 한다. "전문가가 알아서 했겠지"가 아니라, "이 내용이 우리 사업 현실과 맞는지"를 검증해야 한다. 사장님만 알 수 있는 맥락이 빠져 있으면 짚어줘야 한다.
studio.bth는 이 과정을 클라이언트 대시보드에서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매 단계의 산출물이 올라오고, 사장님이 확인하고, 피드백을 주는 구조다.
3. 구현 단계: 확인하기
중간중간 진행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 "다 되면 보여주세요"가 아니라, 중간에 보고 방향이 맞는지 체크해야 한다. 초반에 방향을 잡는 건 10분이면 되지만, 완성 후에 방향을 바꾸는 건 며칠이 걸린다.
4. 완성 후: 쓰기
가장 중요한 건 완성 후다.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써야 한다. 데이터가 쌓여야 개선할 수 있다. 트래킹이 돌아가야 어디가 문제인지 보인다. 방치하면 아무것도 안 변한다.
의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
"사장님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가 아니다. 의무다.
자신의 사업에 투입되는 리소스를 내팽개치지 마라. 300만원이든 2000만원이든, 그 돈이 매출로 돌아오려면 사장님이 주인으로서 관여해야 한다. 외주 업체는 도구를 만들어주는 사람이지, 사업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